과학의 쇠퇴를 알리는 중요한 사건들은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리아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알렉산드리아 왕의 사망과 기원전 322년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 기원전 287년 테오프라스투스의 죽음 등이 있다. 해부학이 처음으로 학문으로 인정된 곳이 알렉산드리아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초기에 가장 위대한 두명의 해부학자는 헤로필로스(기원전 335년~280년, 고대그리스의 해부학자)와 이라시스트라토스(기원전 304년~250년, 그리스의 해부학자)이다.
이 둘은 아시아 출신으로 기원전 3세기에 활동했다. 해부학의 알렉산드리아시대를 열었다. 칼케돈(소아시아 북서부에 있던 고대 도시) 출신의 헤로필로스가 인간과 동물을 최초로 해부하였다고 갈레노스는 전한다. 헤로필로스는 해부학에 관하여(on anatomy), 눈에 대하여(of the eyes), 조산사를 위한 안내서(a popuar hand book for midwives)를 저술했다. 그는 신경계통의 중심 장기로 뇌를 확실히 파악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였던 '심장이 지능을 담당하는 장소'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뇌가 지능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신경의 본질이 특수감각기관과는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이라시스트라토스는 같은 시대의 경쟁자인 헤로필로스보다 어렸고, 순수한 해부학자라기보다는 생리학자였다. 그는 헤로필로스가 해부학의 토대를 구축한 것처럼 생리학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라시스트라토스의 생리학의 개념은 모든 장기들이 정맥과 동맥, 신경의 3계통으로 구성된 '혈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찰에 근거를 두었다.
헤로필로스와 이라시스트라토스가 해부학 분야에서 얻은 명성은 사람 생체해부에 대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무신론을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600명의 살아있는 사람을 해부한 헤로필로스를 백정이라고 비난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소멸과 함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일부 알렉산드리아학파의 제한적인 활동이 몇 세기동안 지속되었지만, 과학의 모든 독창성은 상실되었다. 결국 과학은 인접한 주요 도시에서도 경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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