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기타

해부학의 개혁자, 베살리우스 (1514~1564)

키스너 2024. 12. 2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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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업적을 기반으로 학문분야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해부학을 확립한 학자가 있다. 바로 베살리우스(Vesallius, 벨기에의 해부학자)이다.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라고도 불린다. 베살리우스가 살던 시대는 노동계급의 태동기였으며, 이것이 그를 탄생시켰다. 베살리우스 지식 기반은 그 이전 시대의 사라진 갈레노스의 과학이었고, 예술 역시 그 시대를 반영하여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즉, 새로운 예술과 갈레노스의 과학의 만남이었다. 베살리우스는 브뤼셀(Brussels)의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유년기에 많은 동물을 해부했다. 학교에서는 자연과학을 배우며 이에 대한 지식들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베살리우스가 살던 시대에 자연과학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도움이 될만한 서적들도 존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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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살리우스가 처음에 출판한 해부학 저서는 "갈레노스의 해부학 관례"의 개정판이다. 다음 저서는 같은 해에 출판되었는데, 갈레노스의 해부학 관례를 그림으로 그린 "6장의 일회용 해부학 유인물"이었다. 향 후 해부학의 개혁가가 될 베살리우스의 이 책 두권은 역사적으로는 위대한 관심을 받았으나, 그 당시에는 혁명적이지 않았다. 베살리우스는 파도바에 살며 1537년에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의 근복적인 개혁은 예전부터 있었던 조수와 지시자를 없애고 직접 사람을 해부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파리대학의 보수적인 환경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베살리우스는 사람을 직접 해부하며 보여주었고, 관절과 다른 부분의 경계를 표시한 살아있는 모델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그림을 그렸고, 뼈를 가지고 다녔다. 베살리우스는 교수로서, 그 분야의 거장이었으며, 학생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베살리우스가 28세가 됬을 때 "사람 몸구조에 관하여(On the fabric of the human body)"를 저술하였다. 

1543년 이후부터 베살리우스가 해부학을 주도하였으며, 베살리우스 자체가 해부학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베살리우스는 다른 해부학자들과 다르게 신체 어느 부분에도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유스타키오관, 팔로피오관, 보탈리관, 윌리스고리, 스피겔리우스엽, 실비우스틈새, 바르톨린샘, 라일도, 갓세르신경절, 갈레노스정맥 등등 많은 학자의 이름을 붙인 구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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